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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컨텐츠

『THE BLANK SLATE』 – STEVEN PINKER

by loveyourchoice 2025. 6. 14.

THE BLANK SLATE cover
출처 : YES24 / THE BLANK SLATE cover

『인간 본성에 대하여(The Blank Slate)』의 심리학적 해석

인간은 정말 백지 상태로 태어나는가?

“인간의 마음은 백지 상태다.” 이 오래된 명제는 현대 심리학과 교육학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그의 저서 『The Blank Slate』에서 이 가정을 강하게 부정한다. 핑커는 인간이 경험이나 문화에 의해 전적으로 형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진화 과정 속에서 보편적인 성향을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는 생물학, 심리학, 철학, 역사학을 넘나들며 자연과 양육이 결합된 심리학 이론을 탄탄하게 구성한다. 이 책은 공격성, 도덕성, 성차, 문화 등 민감한 주제들을 과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탐색하며, 인간 행동의 복잡성을 해부한다. 이 글에서는 『The Blank Slate』의 핵심 주장을 요약하고, 그것이 인간 본성과 심리학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살펴본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이기심을 정당화하는가?

핑커는 인간의 마음이 백지 상태가 아니며, 인간은 고유한 성향과 한계를 타고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진화심리학의 이론을 통해 뒷받침된다. 그는 이타성, 도덕성, 공감 능력조차도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라고 본다. 예컨대, 협력이나 연민 같은 능력은 복잡한 사회 집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종종 비판을 받기도 한다 — 생물학적 설명이 불평등이나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핑커는 이에 대해, 진화심리학은 행동을 변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어떤 경향을 지니는지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 한계와 가능성에 맞는 사회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핵심 메시지: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도덕 감정은 학습되는가, 혹은 선천적인가?

핑커의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도덕 감정(moral emotions)에 대한 논의다. 우리는 왜 불의에 분노하고, 약자에게 연민을 느끼는가? 이러한 반응은 사회로부터 주입된 것일까, 아니면 타고난 것일까? 핑커는 인간에게는 도덕 본능(moral instinct)이 있으며, 이는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자연 선택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 말한다. 이는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이트는 도덕적 판단이 이성보다는 직관에서 더 많이 비롯된다고 보았으며, 핑커 역시 도덕 감정은 선천적인 감정 반응과 사회적 조정의 상호작용이라 본다. 그래서 문화는 달라도, 배신이나 학대에 대한 도덕적 민감성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핑커는 도덕성을 백지에 새겨진 문화의 결과가 아니라, 문화에 의해 정제된 생물학적 골격이라 본다.

공격성은 타고난 것인가, 피할 수 있는 선택인가?

이 책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공격성과 폭력성에 대한 설명이다. 핑커는 인간이 일정 수준의 공격성을 타고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곧 운명은 아니라고 말한다. 공격성은 상황과 제도, 문화에 따라 억제되거나 강화될 수 있는 가능성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는 자극–반응 이론에 국한되지 않고, 생물학적 경향과 이성적 자기 통제력을 아우르는 입체적 설명이다. 흥미롭게도 핑커는 인류 역사를 통해 폭력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의 후속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에서 더 깊이 다뤄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핑커는 인간이 단순히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본능을 조절할 수 있도록 진화한 존재라고 본다. 그의 주장은 심리학을 단순한 진단 도구가 아니라, 자기이해와 사회 설계의 매개체로 재정의한다.

결론: 우리는 백지는 아니지만, 다시 쓸 수 있는 존재다

『The Blank Slate』는 인간이 양육만으로 형성된다는 이론에 대한 강력한 반박서이다. 핑커는 인간 행동이 생물학과 문화의 산물이며, 진화적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자기 이해의 가능성마저 닫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본능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생물학적 한계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교육, 윤리, 정치, 심리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한 통찰을 제공한다. 핑커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낙관주의(realistic optimism)를 제안한다. 우리는 자연에 의해 형성되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를 조율할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이중성을 받아들이는 것, 즉 우리는 백지도 아니고, 완전히 결정된 존재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심리학의 핵심 통찰이다. 『The Blank Slate』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 궁금한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자료 출처

  • Pinker, S. (2002). The Blank Slate: The Modern Denial of Human Nature. Viking Press.
  • Haidt, J. (2001). The emotional dog and its rational tail: A social intuitionist approach to moral judgment. Psychological Review, 108(4), 814–834.
  • Tooby, J., & Cosmides, L. (1992).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of culture. In The Adapted Mind. Oxford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