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치유의 의미
완치를 목표로 할수록 좌절하는 이유
우리는 가끔 마음의 병을 신체의 병처럼 다루려고 한다. 심리적 고통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완치, 즉 '완전한 회복'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불안이 모두 사라지고, 우울함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며, 마음이 항상 고요한 상태를 꿈꾼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현실과 충돌하며 더 깊은 실망과 무력감을 초래한다. 심리학적으로도 '완벽한 치유'란 드문 개념이다. 인간의 감정은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변화하고 반응하며, 때로는 예기치 않게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로 회복은 직선적인 과정이 아닌,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비선형적인 흐름에 가깝다. 오늘은 괜찮다가도 내일 다시 무기력해질 수 있고, 꾸준히 자기를 돌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불면증이 재발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감정의 파동을 실패나 후퇴로 해석하면 자기비난으로 이어지고, 결국 치유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이 되기 쉽다. “언제 다 나을까”보다 “이 상태에서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오히려 더 건강하고 현실적인 회복의 관점이 될 수 있다.
회복이란 증상의 부재가 아니라, 살아낼 수 있는 능력이다
현대 정신의학과 임상심리학은 더 이상 회복을 단지 증상이 사라진 상태로 정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증상이 남아 있어도 그 안에서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더 중요하게 본다. 이를 '기능적 회복(functional recovery)'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이 여전히 긴장을 느끼지만 직장에 나가고, 식사를 하고,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생활할 수 있다면, 이는 회복의 한 형태로 간주된다.
이런 관점은 우리에게 위안을 건넨다. 완벽하지 않아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아프고 무거워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치유다. '회복 중인 나'를 인정하고, 그 회복이 반드시 흠 없는 모양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능적 회복의 의미
기능적 회복은 증상의 유무보다는, 일상적인 루틴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된다. 특히 조현병, 주요 우울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같은 만성적이고 재발이 잦은 질환에서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더라도 아침에 일어나 씻고, 식사하고, 일과를 수행할 수 있다면, 이는 분명 의미 있는 회복의 진전이다. 미국심리학회(APA) 역시 회복을 단순히 증상이 사라졌는지로 판단하지 않고, 자기조절 능력과 사회적 기능의 회복 여부를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즉, 회복은 감정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되찾는 것이다.
자기 복원과 현실 수용을 통한 회복
심리학은 또한 '자기 복원력(self-restorative capacity)'이라는 개념을 회복의 한 과정으로 제시한다. 이는 외부의 도움 없이 자신의 정신 체계를 스스로 조율하고 재구성하는 내적 능력을 의미하며, 정신분석과 인지행동치료 등 다양한 접근법에서 강조된다. 대표적인 전략 중 하나는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의 의미를 다시 해석하고 삶의 맥락 속에 재배치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회복 훈련은 내가 기존 글에서 많이 다루었던 '회복 탄력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예컨대 불안이 다시 찾아왔을 때, 그것을 '치유의 실패'가 아니라 '일시적인 감정 반응'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자기 복원력이 작동한다. 이런 재해석은 회복을 완전무결한 상태가 아닌, 비틀릴 수는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상태로 이해하게 해준다. 즉, 회복이란 고통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일상 속 치유: 평범함에서 발견하는 회복의 감각
회복은 극적인 전환이라기보다는,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평범한 삶으로 천천히 돌아오는 과정일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오히려 회복의 신호일 수 있고, 감정의 물결이 몰려왔지만 쓰러지지 않은 하루가 바로 치유의 증거일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조용한 확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 하루를 견뎌낸 나 자신에게 자비로운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치유는 목적지가 아니라, 그 과정을 품고 살아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자료 출처
-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2020). Clinical Practice Guidelines.
- Jacobson, N., & Greenley, D. (2001). What is recovery? A conceptual model and explication.
- 김춘경 외 (2020). 『심리학의 이해』. 학지사.
- 박영신 (2019). 『자기이해와 성장을 위한 심리학』. 학문사.
- 박혜연 (2021). 『회복탄력성의 심리학』. 심신서원.
- Hayes, S. C. et al. (2012).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The Process and Practice of Mindful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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