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심리학 컨텐츠

책리뷰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by loveyourchoice 2025. 5. 7.

출처 : 교보문고 홈페이지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표지

마흔의 철학, 심리학으로 다시 읽다

심리학 분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서점에 가도 심리학 도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최근 들어 자주 보이는 책은 "쇼펜하우어"와 관련된 제목들이다. 본격적인 중년으로 가는 길에 있는 나에게도 꼭 필요한 책인 것 같아 읽어보고 리뷰를 남겨보게 되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철학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마흔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는 독자들에게 맞춤형으로 풀어낸 책이다. 저자 강용수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단순한 철학적 지식에 머물지 않고, 현실 심리학과 접목하여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 책은 단순히 철학적 통찰을 넘어, 심리학적 자가치유와 자아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가 강조한 '성장 지향적 자아'(actualizing self)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철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직면하고, 심리학적 도구로 구체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은 마흔의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마흔, 심리적 전환의 시간

마흔이라는 나이는 많은 이들에게 심리적 전환점이다.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위치를 잡았지만, 내면적으로는 공허함과 불안이 찾아오는 시기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중년기 위기(midlife crisis)라고 설명한다. 융 심리학에서는 이 시기를 '자아(Self)의 통합을 위한 필연적 시련'으로 보며,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로 해석한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이 중년기의 심리적 갈등을 철학적 사고를 통해 다독이고, 삶의 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를 단순한 절망이 아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수용하는 태도로 해석한다. 이는 현대 심리학의 수용전념치료(ACT)와 맞닿아 있다. 고통을 피하려 하기보다는 고통을 수용하고, 가치 있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철학과 심리학은 공통된 지점을 가진다. 이를테면, 직장에서의 한계나 가정 내 역할 갈등을 회피하는 대신, 자신에게 진정 중요한 가치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는 과정이 이에 해당한다.

욕망의 본질과 내면 평화

특히 책에서는 인간 욕망의 본질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통찰을 깊이 있게 다룬다. 쇼펜하우어는 인간 존재를 끊임없이 욕망하는 의지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규정했다. 현대 심리학의 동기이론에서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예를 들어,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이나 라이언과 데시의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역시 인간 내적 욕망을 동력으로 본다.
하지만 이 욕망은 만족되는 순간 또 다른 결핍을 낳는다. 새 차를 사고, 집을 넓혀도 곧 익숙해져 행복감은 사라진다. 이는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 현상으로, 긍정심리학에서도 반복해서 확인된 바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그 사실을 다시 일깨우며, 진정한 평안은 외부 조건이 아닌 내면의 수용에서 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예컨대, 돈과 지위가 아닌 자신의 관계의 질이나 의미 있는 활동에서 더 지속적인 행복을 찾으라는 것이다.

관계의 심리학, 거리 두기의 지혜

또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관계의 심리학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쇼펜하우어는 인간관계를 '고슴도치 딜레마'로 설명하며, 타인과의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지혜를 강조했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대인관계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경계 설정(boundary setting)을 권장한다. 지나친 밀착은 갈등을 부르고, 지나친 거리두기는 외로움을 심화시킨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끊임없이 부탁을 들어주다 소진되는 '퍼플피플'이나 가족 내 감정적 요구를 무리하게 감당하다가 번아웃에 빠지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책은 독자들에게 이 균형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심리적 자율성과 타인과의 조화로운 관계 유지를 동시에 추구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현대의 '애착이론'에서 말하는 안정애착형 관계의 지향점과도 연결된다.

부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인지적 재구성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 쇼펜하우어의 관점은 그것을 삶의 본질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치료의 핵심 원리와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나는 실패자다'라는 자동적 사고에 갇힌 이들에게 CBT는 '나는 노력 중이다'로 사고를 재구성하라고 가르친다. 마찬가지로, 쇼펜하우어는 고통과 결핍을 인간 존재의 필연으로 보며, 이를 없애려 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라고 제안한다. 생각을 바꾸면 감정이 달라지고, 그 결과 행동 또한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긍정심리학에서 '성장형 사고방식(growth mindset)'과도 통한다.

자기이해와 자기수용의 시작

마흔을 맞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기 자신과의 심리적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경쟁과 성취 위주의 사회에서 지쳐버린 자아를 돌아보고,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의 노예'가 아닌, 내면의 평온을 추구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이는 곧 자기이해(self-understanding)와 자기수용(self-acceptance)이라는 심리학적 성장의 과정이다.
심리치료 현장에서도 자기수용은 우울증과 불안 감소에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는 자존감 회복의 출발점이 된다. 예컨대, 더 이상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고, 내 욕구와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철학적 언어로 풀어낸다.

철학과 심리학이 만나는 지점

결론적으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철학서이면서도 심리 치유서로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심리학적으로도 이 책은 수용전념치료, 인지치료, 관계 심리학 등 다양한 이론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마흔이라는 인생의 분기점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철학의 지혜와 심리학의 실천적 가이드를 동시에 제공한다.
현대인의 정신적 탈진과 허무감에 철학적·심리학적 해답을 찾고자 한다면, 이 책은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마치 철학이 방향을 제시하고, 심리학이 구체적 실천을 돕는 한 쌍의 도구처럼, 두 학문이 이 책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출처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수용전념치료(ACT) 이론
  • 인지행동치료(CBT) 기법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용수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