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심리학

목표 중독 사회 속 의미에 대한 두려움

by loveyourchoice 2025. 5. 29.

fear of meaning
출처 : 픽사베이 / 의미부여 관련 이미지

목표가 가리는 진짜 두려움

우리는 목표를 세우고, 성공을 위해 달리며, 모든 순간을 생산적으로 채우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심과 열정이 실은 다른 무언가, 진정한 의미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는 가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셨나요? '의미 회피증'은 삶의 깊은 의미를 직면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려는 태도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그 이유는 그러한 의미가 감정적 노출, 책임감, 자기 성찰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성과와 즉각적인 만족으로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의미'가 아닌 '측정 가능한 목표'를 추구합니다. 왜냐하면 진짜 의미는 감당하기엔 너무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역시 이렇게 의미에 중독된 채로 살아가지 않았나 반성해 보며 이 글을 작성해 보고자 합니다.

의미 기피의 심리적 기원

실존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자기 한계와 마주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진정한 의미란 외적 보상이 아니라 고통과 긴장 속에서 얻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미지, 속도, 완벽주의를 중시하는 사회는 그러한 마주침 자체를 어렵게 만듭니다. 한국의 심리학자 박소현은 "의미 회피는 종종 정서적 탈진과 정보 과잉에서 비롯되며, '무엇이 중요한가'를 묻는 일조차 또 하나의 과업처럼 느껴지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또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은 의미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진정한 의미는 성공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 요소로 간주되기 쉽습니다. 인지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인지적 부조화의 한 형태입니다. 깊이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그 대가를 피하려는 내적 긴장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피상성의 유혹: 목표 중독과 감정의 단절

의미가 위협적으로 느껴질 때, 사람들은 수치화된 목표에 집착하게 됩니다. 다이어트 수치, 생산성 앱, 업무 성과 등이 그것입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나쁘지 않지만, 그것들이 실존적 질문을 막기 위한 방패로 사용될 때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면, 건강해 지기 위해 하는 다이어트에서 수치화된 몸무게에만 집착하며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감행하는 것이죠. 융 심리학에서는 이를 '페르소나 함정'이라 부르며, 외부 역할에 대한 과도한 동일시는 내면 자아를 소외시키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한국 임상심리학계에서는 '목표 강박'에 대해 "감정적 불안감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 전략"으로 해석하며, 수치를 세고 비교하고 측정하는 습관이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상을 받을 수는 있지만, 내면의 감정 깊이와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의미 회피는 감정 회피의 다른 이름

의미를 회피한다는 것은 결국 감정적 노출을 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짜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고, 삶의 방향과 신념을 찾아가는 동시에, 그 안에 담긴 고통과 상실, 두려움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단지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정서적 용기를 필요로 하는 심리적 행위입니다.

정신역동 이론에 따르면,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은 의미에 대한 두려움과 닮아 있습니다. 둘 다 ‘나’를 드러내야만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어떤 감정에 취약한지를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 이러한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이 곧 위협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이지현 정신과 전문의는 이를 ‘의미 회피 반응’이라 명명하며, 주로 관계 트라우마를 겪었거나, 성장 과정에서 감정 표현보다 성취와 통제를 우선시한 완벽주의적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에게서 자주 관찰된다고 분석합니다. 이들은 스스로 감정을 잘 다룬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감정을 회피하거나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감정은 어릴 적부터 평가나 통제의 대상이었기에, 성인이 된 후에도 그것을 마주하는 일이 버겁고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는 민감하지만, '왜 그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합니다. 계획과 목표, 성취는 있지만, 감정의 맥락이 빠진 채로 삶을 지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면의 공허함과 정체성 혼란에 마주하는 것입니다. 결국 의미 회피는 일시적 회피일 뿐, 억눌린 감정은 형태를 달리해 관계의 갈등, 만성 피로, 정서 마비 등의 방식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 두려움 없는 의미 선택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은 거대한 사명을 갖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솔직하게 마주하는 일입니다. 의미 회피는 나약함이 아니라 감정 노출에 대한 방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방어기제처럼, 지나치면 우리를 옥죄는 덫이 됩니다. 의미를 되찾는 첫 걸음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허용되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실존심리학에서는 의미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창조는 다음과 같은 부드러운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회피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하는가?” 성과의 사이클에서 벗어나 속도를 늦출 때,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사람에게 다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연결 안에서, 성취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부터 의미는 서서히 드러납니다.

자료 출처

  • Yalom, I. D. (1980). Existential Psychotherapy. Basic Books.
  • 박지연 (2021). “과잉 의미화 사회에서의 심리적 탈진.” 한국심리학회지, 18(4), 203-222.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2020). “자기기반 불안과 의미추구 간의 상관관계.” 인지정서 연구, 16(3), 181-198.
  • 김윤아 (2022). “가벼움 중독과 의미 회피 메커니즘.” 연세대학교 심리문화연구소 논문집, 9(2), 149-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