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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심리학

미뤄진 감정이 뇌에 남기는 심리적 비용

by loveyourchoice 2025. 5. 27.

출처 : 픽사베이 / 미루다 관련 이미

느끼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 단지 이자가 붙어 돌아올 뿐

“지금 울 시간 없어. 나중에 감정 정리할게.”
“지금은 바빠서 이 감정은 잠깐 접어둘래.”
우리는 위기, 상실, 탈진의 순간마다 이런 말을 종종 내뱉습니다. 슬픔, 분노, 혼란을 '나중에' 감당하겠다며 밀어둡니다. 그러나 뇌는 미뤄진 감정을 잊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감정을 다시 불러오고, 상기하며, 때를 기다립니다. 억압되거나 회피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자리만 바꿀 뿐이며, 시간이 지나면 더 큰 무게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우리는 이 현상을 감정 부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억압과 반동형성: 감정은 숨겨져 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정신분석 이론은 오랫동안 억압의 심리적 결과를 강조해 왔습니다. 감정을 무의식에 밀어넣으면 겉보기에 잘 지내는 것 같지만, 내면에는 지속적인 긴장이 쌓입니다. 종종 억압은 반동형성이라는 방어기제와 함께 작동합니다. 이는 속으로는 슬프거나 분노하면서 겉으로는 유쾌하고 유능하게 행동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자아를 보호해줄 수 있지만, 진정한 감정 소화를 방해합니다.
서울대학교 신경심리학 연구실의 연구에 따르면, 억압된 감정은 단순히 감각 기억에만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서사적 기억에도 저장되며, 유사한 상황이나 사람을 마주할 때 무의식적으로 회상됩니다. 그 감정은 다 끝난 것 같아도 여전히 활성 상태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감정을 미루면 뇌의 자기조절 기능이 무너진다

감정을 느끼는 과정은 수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감정은 뇌의 여러 부위가 참여하는 복합적이고 능동적인 인지 과정입니다. 감정을 미루면, 뇌는 그 감정을 배경에서 계속 처리하게 됩니다. 특히 편도체(감정 처리 담당)와 전전두엽(논리적 조절 담당) 사이에 불균형이 생깁니다.
한국 인지신경과학회에서는 감정 억압이 편도체의 만성적 과활성을 초래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상태는 신체적으로 불면증, 만성 피로, 위장 장애, 통증 등의 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정서 처리 이론(emotion processing theory)에 따르면 감정은 표현되고 통합되어야만 완전히 종료됩니다. 말하지 않은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으며, 감춰진 두려움은 약해지지 않습니다. 감정 부채는 뇌를 미해결된 상태에 가둔 채 에너지를 소진시킵니다.

감정 부채는 기억을 왜곡하고 자아 정체성을 흐린다

감정은 단순히 기분에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감정은 기억과 해석, 그리고 자아 개념까지 좌우합니다. 감정이 처리되지 않은 상태가 길어질수록, 우리는 과거의 사건들을 점점 더 왜곡되게 기억하게 됩니다.
정서-기억 상호작용 연구에 따르면, 감정적으로 각인된 기억은 중립적인 기억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되며, 반복될수록 더 강력해진다고 합니다. 이는 서울대 임상심리연구자 박성은의 정서기억 강화 이론으로도 설명됩니다. 억눌린 감정이 반복적으로 되살아나면, 초기 사건보다 그 감정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며, 이는 자존감 저하, 자아혼란,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우리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해 반복해서 느낀 감정에 의해 현재의 감정과 정체성이 조절되게 됩니다.

결론: 감정을 미루지 말고, 정직하게 느끼는 연습부터

감정은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억 속에서 점점 더 견고해지고, 더 강력한 모습으로 되돌아옵니다. 감정 부채는 현재의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침식시키고, 뇌를 미해결 상태에 가둡니다. 지금의 바쁨이 미래의 정서 비용이 되는 셈입니다.
감정 부채를 갚기 위한 첫걸음은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일기장에 기록하거나, 누군가와 나누는 것만으로도 감정 회피 대신 감정 소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심리적 위생입니다.
미뤘던 감정은 결국 언젠가는 돌아옵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용기를 내어 그것들을 마주본다면, 정서적 이자 없이 그것들을 통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작성함으로써 오늘부터라도 감정에 대해 미루지 않고 소화하고 넘어가는 연습을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자료 출처

  • Freud, S. (1915). 『억압(Repression)』. 전집 중 발췌.
  • Schacter, D. L. (1999). 『기억의 7가지 죄』, American Psychologist.
  • 서울대학교 신경심리학 연구실 (2020). "억압된 감정과 회상 방해."
  • 한국인지신경과학회 (2022). "감정 억압에 따른 신경생리적 반응 연구."
  • 박성은 (2021). "감정 데이터와 자아 정체성의 상관성." 『한국정신과학회지』, 18(2), 155–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