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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컨텐츠

알랭 드 보통 《불안》

by loveyourchoice 2025. 5. 22.

Status Anxiety Cover
출처 : 알라딘서점 / 알랭드보통 불안 표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 이해하기

도입: 우리는 왜 이토록 '자신의 위치'에 불안할까

지난번 글에서도 알랭 드 보통의 책을 한권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작품『불안(Status Anxiety)』이 현대인의 마음을 잘 투영한다는 생각이 들어 동일 저자의 작품을 한번 더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무한한 가능성과 이동성, 투명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우리는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감정은 오히려 끊임없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생존이나 물질적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정서적 부담감에서 비롯됩니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Status Anxiety)』에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고통의 상당 부분은 지위(Status)와 관련된 불안이라고 말합니다. 즉, 부나 권력이 아닌 ‘사회적 지위’가 오늘날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판단하는 핵심 척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은 그의 핵심 사상을 중심으로, 심리학적 이론과 연결해 현대인의 감정 지도를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지위는 거울이 된다: 비교가 만든 불안의 문화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하는 핵심 주장 중 하나는, 오늘날 우리는 ‘성공은 개인 책임’이라는 믿음에 의해 불안에 시달린다는 점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이 믿음이 자유를 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실패를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 여기는 문화로 이어집니다. 예전처럼 태생적인 계급에 따라 위치가 정해졌던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은 능력에 따라 지위가 결정된다고 믿는 ‘능력주의’의 신화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신화는 좌절을 개인의 부족함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자존감과 자기 가치에 깊은 타격을 줍니다.

알랭 드 보통은 ‘야망의 민주화’가 감정적으로 양날의 검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누구나 부, 명예, 성공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우리는 ‘불공평한 구조’가 아니라 ‘내 잘못’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상향 비교(Upward Social Comparison)’, 즉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경향과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SNS, 리얼리티 쇼, 과시적 소비문화가 만연한 지금, 사람들은 이상화된 이미지에 자신을 대입하며 불안을 키우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의 불안을 부추기는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들

알랭 드 보통은 현대 사회의 자본주의, 개인주의, 낭만주의가 결합해 '성공이 곧 자기 존재 가치'인 문화를 형성했다고 말합니다. 자본주의는 창의성과 경쟁을 찬양하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성과 압박과 불안정한 자존감을 유발합니다. 낭만주의는 사랑이 우리 존재를 증명해준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인 기대를 심어주며 좌절을 낳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심리학에서도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나 ‘인정욕구 과잉’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우리는 성공에 쉽게 익숙해지고, 더 많은 성취와 인정 없이는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한국 임상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인정 중독’으로 보고, 특히 학업과 직장, 가정에서 높은 성취를 요구받는 사회에서 흔히 나타난다고 분석합니다.

불안에 맞서는 철학의 처방: 관점의 전환

『불안』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문제를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철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빌려, 기존의 가치 기준을 의심할 것을 권합니다. 스토아 철학이 말하듯, 사회적 지위는 덧없고, 진정한 존엄은 자신의 가치에 따라 사는 삶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문학과 예술이 공감과 겸손,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수용전념치료(ACT)에서 강조하는 핵심 원리와도 일치합니다. ACT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제거하려 하지 말고, 그 감정을 관찰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진정한 가치에 기반해 살아갈 것을 권합니다. 알랭 드 보통의 제안처럼, 우리는 ‘평범함’에도 존엄이 있음을 인정하고, 불안의 감정을 감싸 안으며 새로운 시야를 열 수 있습니다.

결론: 증명하려는 삶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삶으로

『불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지금 불안한가? 그 기준은 진짜 당신의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고, 외부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살아갑니다. 알랭 드 보통은 그런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진정한 자존감은 경쟁이 아니다." 성공이나 명성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낼 때, 우리는 비로소 고요하고 단단한 자기 자신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불안은 제거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기준을 따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불안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이 말하는 질문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나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이 글을 통해 현대인들이 조금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참고문헌

  • 알랭 드 보통 (2004). 『불안(Status Anxiety)』. Hamish Hamilton.
  • 페스팅거, L. (1954). 『사회적 비교 이론』. Human Relations.
  • 라이언, R. M., 데시, E. L. (2000). 『자기결정 이론』. American Psychologist.
  • 헤이스, S. C. 외 (1999). 『수용전념치료(ACT)』. Guilford Press.
  • 김현석 (2021). 「사회불안의 사회심리학적 메커니즘」. 한국임상심리학회지.
  • 이영호 (2019). 『현대 한국사회에서의 인정과 정신건강』. 서울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