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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컨텐츠

영화 《TÁR》(타르)를 통해 본 심리학

by loveyourchoice 2025. 5. 28.

movie, TAR poster
출처 : 씨네큐브 / 영화 타르 포스터

무대 위에 비친 내면의 풍경

 

저는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지휘자의 삶을 다룬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그 중 최근에 인상깊게 감상한 영화를 심리학적 측면에서 리뷰해 보고자 합니다. 《TÁR》(타르) 는 단순한 여성 지휘자의 전기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음악이라는 예술을 배경으로 한 내면 심리의 해부이며, 재능, 야망, 통제, 상처가 어떻게 얽히는지를 보여주는 심리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단순한 예술계의 권위자가 아닌, 내면의 균열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완벽하고 냉철하지만, 실제로는 인정 욕구와 자기 통제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인간입니다.

이 영화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고도로 통제된 세계 속에서 리디아가 구축한 내적 질서가 점차 붕괴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감정을 억압하며 자아를 유지하려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는 이야기 《TÁR》이기 이전에, 하나의 임상 사례이자 심리학적 분석의 대상이 됩니다.

2. 통제의 환상: 지휘라는 심리적 갑옷

영화 전반에 걸쳐 리디아는 철저히 모든 것을 통제합니다. 리허설 방식, 지휘 동작, 음악적 해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하죠. 이는 심리학적으로 '반동 형성'이라는 방어기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실제 감정과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내면의 취약성을 감추는 방식입니다. 리디아의 완벽주의는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불안정한 내면을 덮기 위한 심리적 방어벽입니다.

임상 심리학자 데이비드 샤피로는 이런 강박적 인격 유형이 통제를 통해 안정감을 확보하려 한다고 보았습니다. 리디아는 통제를 놓는 순간 자신이 무너질 수 있음을 직감하고 있으며, 그래서 더 집요하게 질서를 유지하려 듭니다. 하지만 이는 감정적 유연성을 상실하게 만들고, 타인과의 진정한 교감이 불가능한 인물로 만듭니다.

3. 권력의 심리학: 방어기제와 인지 왜곡

리디아는 젊은 여성 음악가들과의 관계에서 권력을 오남용하며 자신을 지켜내려 합니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실패가 아니라, 심리학적으로는 프로이트의 '전위(displacement)' 개념에 가깝습니다. 본래의 불안을 보다 안전한 대상으로 전이시키는 이 방어기제는, 리디아가 불안을 권력과 지배로 보상하려는 심리 구조를 설명해줍니다.

또한 그녀는 인지적 왜곡에 빠져 있습니다. 흑백논리, 개인화, 자기합리화 등의 사고 방식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외부의 비판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아론 벡의 인지치료 이론에 따르면, 성취 지향적인 사람들은 외적 인정에 의존할수록 이러한 왜곡된 사고에 쉽게 빠진다고 합니다. 한국의 임상심리학자 김윤재는 "권력 스트레스 반응"이라는 용어로, 높은 통제 욕구를 지닌 사람들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도덕적 이중 잣대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4. 음악이 무너질 때: 감정 회피와 억압의 역습

리디아에게 음악은 감정이 통제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음악 역시 혼돈으로 바뀌어갑니다. 환청, 리듬 왜곡, 조화의 붕괴는 그녀의 심리적 와해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림자(shadow)'의 반란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억눌렀던 죄책감, 분노, 두려움이 예술이라는 필터를 뚫고 표면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의 연구에 따르면, 고기능 불안과 정서 억제 성향을 지닌 이들에게서 감각 왜곡과 감정 왜곡이 빈번히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는 '감정 회피 과부하'로도 불리며, 회피 자체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리디아가 음악적 세계의 통제를 잃어갈수록, 그녀는 자아를 상실하고 심리적 혼란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5. 결론: 붕괴는 새로운 자기의 탄생인가

영화의 마지막에서 리디아는 더 이상 지휘석에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집착했던 세계로부터 밀려났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또 다른 심리적 진실이 있습니다. 이야기 치료(narrative therapy)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자아는 서사로 구성됩니다. 리디아의 서사는 더 이상 그녀의 현실과 맞지 않게 되었고, 결국 붕괴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붕괴는 단순한 몰락이 아닙니다. 이는 자아 재구성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지켜주던 갑옷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불완전한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더 이상 권위 있는 무대에 서지 않지만, 그 무대는 처음으로 그녀 자신이 선택한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위계의 포기, 자아 방어의 해체, 그리고 비로소 시작된 감정의 자율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

  • Beck, A. T. (1976). Cognitive Therapy and the Emotional Disorders.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 Jung, C. G. (1953). Psychology and Alchemy. Princeton University Press.
  • Kim, Y. J. (2021). 권력 스트레스 반응과 인지왜곡의 상관성. Korean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16(2), 21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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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apiro, D. (1965). Neurotic Styles. Basic Books.
  • Winnicott, D. W. (1960). Ego Distortion in Terms of True and False Self. In The Maturational Processes and the Facilitating Environment. London: Hoga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