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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치유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가?

by loveyourchoice 2025. 4. 29.

심리학으로 들여다본 마음 치유의 과정

가끔 TV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자기 가족이 살해당한 유가족 임에도 그 용의자를 진정으로 용서한 사연을 볼 수 있다. 나는 아직 그런 마음이 진정으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과연 그 마음속에 어떤 심리학적 원리가 작용하는 것일지 궁금해진다. 이 글에서 용서의 심리학적 측면을 다뤄보고자 한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앗아갔을 때,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분노하고 미워하게 된다. 이는 인간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극심한 고통을 안긴 사람조차 용서하는 사람들이 있다.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심리학은 진정한 용서라는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까?

용서란 무엇인가: 감정의 억제가 아닌, 감정의 초월

일반적으로 용서는 잘못한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잘못을 없던 일로 치부하는 것으로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용서를 ‘상처 입은 사람이 복수나 원망의 감정을 내려놓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이는 가해자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고, 그것을 초월해 나아가는 적극적인 심리적 선택이다.

심리학자 에버렛 워싱턴의 연구에 따르면, 용서는 억지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충분한 시간과 내적 성찰을 통해 자발적으로 발생해야 한다고 한다. 억지로 '용서해야 한다'는 압박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2차 상처를 줄 수 있다. 진정한 용서는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해방의 과정이다.

진정한 용서가 가져오는 심리적 변화

용서가 가져오는 심리적 이점은 상당하다. 플로리다 대학교 심리학 연구팀은 용서가 분노, 스트레스, 불안 수준을 유의미하게 낮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억눌린 분노는 심장 질환, 고혈압, 면역 저하 등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정신 건강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용서는 단순히 도덕적 미덕을 넘어 생존을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또한, 용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받으면,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마저 흔들리기 쉽다. 하지만 용서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는 '나는 상처받았지만, 그 상처에 의해 내 인생이 지배되게 두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된다. 이는 곧 자존감 회복으로 이어지며, 삶에 대한 주체성을 강화시킨다.

왜 어떤 사람은 용서를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할까?

심리학은 개인의 성향, 과거 경험, 사회적 지지체계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이 차이를 설명한다. 특히 자기연민(self-compassion) 수준이 높은 사람은 타인에 대한 용서도 수월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연민은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보편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가해자의 인간적 결함을 바라보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반면, 트라우마가 심각하거나, 가해자가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경우, 용서는 더욱 어려워진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 간 권력 불균형이 존재하거나, 사회적으로 제대로 된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용서 자체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또 다른 억압처럼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용서는 개인이 스스로 선택해야 할 문제이지,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출처 : 픽사베이 / 용서 관련 이미

진정한 용서를 위한 심리학적 접근법

심리치료에서는 용서를 강제하지 않는다. 대신, 다음과 같은 단계를 통해 내면을 치유하도록 돕는다.

  1. 감정 인식과 수용: 분노, 슬픔, 배신감 등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인식하고 표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억압된 감정이 무의식 속에서 독이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2. 사건의 재구성: 가해자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뤄질 수 있다. 이는 가해자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인간 행동의 복잡성을 이해하면, 분노가 조금씩 누그러들 수 있다.
  3. 자기 치유 중심의 접근: 용서의 목적은 가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괴롭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
  4. 시간에 대한 존중: 용서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상처가 아물지 않듯, 용서도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된다. 스스로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는 자세가 중요하다.

진정한 용서는 결코 약함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용서하면 약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심리학자 루이스 스미스는 “진정한 용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약한 사람은 결코 깊은 상처를 마주할 수 없으며, 상처를 끌어안고 나아가는 것은 강인한 정신력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서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이자, 인생을 다시 살아가려는 강력한 선언이다. 가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진정한 용서를 선택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용서는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글을 통해 이 부분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였다.


참고 출

  • 워싱턴, 에버렛. "용서와 심리적 치유: 개인의 선택에 관한 연구."
  • 플로리다 대학교 심리학 연구팀. "용서와 신체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한 종단 연구."
  • 스미스, 루이스. "진정한 용기의 심리학."